쓸데 없는 말좀 안하시면 딱 좋아요.
왜 그렇게 하지않아도 되는 말을 하세요..

원래는..

어렸을때부터 이집 저집으로 옮겨다니면서 살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겟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배운거 없고 부모덕없는 엄마가 먹고살기 위해서 아이를 데리고 사는건 힘들었다. 그러니 말썽도 안 부리고 조용한 나를 고모할머니, 이모네 등 잘 기억은 나지않았지만 이집 에 잠시 저집에 잠시 맡긴것 같다. 난 지금 그때의 나의 엄마보다 두배나 나이가 많고 아이도 새배로 더 키운 중년이다.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면 딱하기도 하고 철이 없기도 하고 여러가기 마음이 교차한다. 아무튼 난 그런 바랑잎 같은 엄마 아래서 이집저집 살이를 해야했다. 다행이 엄마는 나를 친척집의 식모살이로는 들여보내지않았다. 하숙처럼 잠시 아이를 맡아주면 달달이 하숙비를 주는 시스템을 택했다. 난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더욱이 살림이나 일머리는 잼뱅이여서 어느집에 가도 그리 환영받는 아이는 아니였다. 이쪽에 놓으면 이쪽에서 가만히 한 시간 서있고 저쪽으로 가..하면 저쪽에서 한 시간 아무말없이 서있는 그야말로 꿔다놓은 보릿짝이였다. 눈치도 없고 극강 내성적이고 붙임성도 없어서 하루에 말한마디 듣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중학교때였던가? 우리 엄마 친구가 일주일정도 우리집에 머물렀는데 그때 나를 말 벙어리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일주일 정도 지나 일요일 늦은 아침상에서 ” 엄마, 이거 짜..” 라고 말하니까 엄마 친구가 화들짝 놀라면서 부엌에 있던 엄마에게

” 원례야! 니딸 말 텄다.! ” 하고 환호성 같은 소리를 지르셨다.

알고보니, 내가 말 벙어리인데 생선 먹으면서 말문이 터졌다고 생각하셨단다. 울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깔깔 거리고 웃었고 난 뭔가 씁쓸한 생각도 들고 엄마 친구가 참 남의 일에 오지랍이 넓은 푼수 아줌마라고 생각했다.

안과 밖이 달랐다

주로 집에서는 이렇게 난 말이 없었다. 말하고 싶은 대상도 없었고 그리고 그리 말하고 싶지않았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밖에서는 달랐다. 나는 말이 많았고 괜히 웃겼고, 그리고 주목을 끌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진거 없고, 추잡한 위생상태의 학생인 내가 학교에서 살아남고 아이들하고 지낼려면 ” 말” 이란걸 해야했다. 그래서 난 쓸대없는 말 잔치의 작전을 세운듯 했다. 자연스럽게. 의외로 이 작전은 잘 들어 맞았다.

말잔치 작전의 효과

학교에서 좀 잘 나가고 공부도 잘하고 주로 뒷줄에 앉아있는 아이들과 그때부터 친하게 된것 같다. 또한 그때부터 선생님들의 눈에 띄어 가끔씩 나의 이름이 선생님들에게 불려지기도 했다. 말잔치 작전 전에는 나는 학급에서 있는지 없는지 존재자체가 불 투명한 아이였다. 이런 생존전략의 “말하기”는 어느순간 나의 무기가 되었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였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난 어느 순간 말이없는 침묵을 견디기 어려워해서 침묵을 깨는 걸 나의 엉뚱한 말로 한다든가, 안해도 되는 말을 해서 어색한 분위기를 넘어가기도 했다. 또한 사람들간에도 거절을 해야되는 상황의 어색한 분위기를 못참아냈다. 그래서 거절을 안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냉랭한 상황이 싫어, 또 괜히 이상한 말로 공기를 페인트 해나갓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내가 왜 이런 광대짓을 하나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스쳐갔다. 그런데, 난 외로움이 싫었다. 혼자 너무나 긴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며칠을 있어야하는 외로움이 싫고 ,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않는 친구하나없는 어린시절의 외로움은 반복하기 더욱더 싫었다. 혼자 집에 있는 건 괜찮은데 학교에서 아무도 나와 놀지않는 그런 외로움은 두번 다시 겪고 싶지않았다.

익숙해지는 습관

그러니 어느덧 말을 안하면” 나는 어린시절때 친구가 없었으니 난 말을 안하면 친구가 또 없다.”.라고 머리속에 세뇌된듯하다. 난 돈도 없고, 잘살지도 못하고, 공부도 잘하지 못하고, 가정환경도 개판이고, 그러니 말을 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어갔는지, 어느 순간부터 사회생활에서 나를 들어내기 위해서 쓸데 없는 말 잔치 리싸이틀을 시작 했다.

이런 나를 내가 알았냐고? 절대 몰랐다. 절대로 내가 나의 외로움을 참지못해서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는지 몰랐다. 나는 내가 어색한걸 참지못한다, 그리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여러가지 핑계와 미사여구를 썼다. 절대로 알고 의식적으로 말을 해서 환심을 사야지 하는 의도는 일도도 없었다. 그저 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지라는 이상한 도덕적인 모습과 여러가지가 믹스된 이상스런 이유를 댄듯했다.

진심어린 충고

살면서 기억되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신세를 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에 김동호라는 사람이 있다.이 사람만 생각하면 참 고맙고 내가 진 빚이 크다 싶다. 여러가지로 내 스스로 빠져나올수 없는 삶의 블랙홀에 있다고 생각한 시절에 , 김동호는 나에게 용기를 준 친구이다. 뒤돌아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친구를 만난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생활을 하다 만난 친구이니 우리는 나이차이가 거의 없는데도 깍득하게 존댓말을 했다. 잦은 만남을 가지면서 점차 많이 친해졌다. 그의 와이프가 내가 사는 동네 근처로 일하게 되었을때, 그녀의 점심을 내가 챙겨주곤했다. 식구끼리도 친하게 되어 가끔 금요일주말이 되면 서로의 집에서 저녁을 같이 하기도 했다.

이 친구가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 케이트님은 왜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하세요?”

순간 당황했다.

” 네?”

” 아니, 왜 안해도 되는 말을 하고, 쓸데 없는 말을 하는지.. 가만히 계시면 되는데..”

뭔가 들킨 기분이 들어서 그때의 무안함은 말로도 다 표현을 못하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새빨게졌나보다.

” 가만히 계시면 정말 매력덩어리이시고 아우라가 그대로 느껴지는데 왜 쓸데없는 말을 하셔서 그걸 다 엎으세요?”

뭔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싶고 기분도 상하고 무례하다고 맞받아치고 싶은데 정곡을 찔린 기분이 들어서

” 어색한걸 못견뎌요..” 하고 핑계를 덧붙였다.

” 그냥 가만히 있으면 그 어색함이 흘러가요..”

” 그 어색함을 어떻게 견뎌요?”

반대로 물어보니 김동호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한다.

”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혼자 생각했다.

” 그럼 김동호님도 이런 어색함을 느껴요? 근데 그냥 있는거여요?”

” 네”

그때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어색함을 느끼고 다들 불편해하는것을.

“아.. 내가 여태까지 내가 몹쓸 지랄스런 습관이 있구나.”

화석같은 습관들..반복

지난주 부터 아이들 홈스쿨링 스포츠를 시작했다. 홈스쿨링를 하는 가족은 의외로 많았다. 첫 시간이기도 하니까 엄마들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원래 낮을 많이 가리는 남편은 멀찌감치 아이들이 하는 게임하는걸 보고 사진도 찍었다.

난 또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말잔치 입이 가만있지않기 시작했다. 예전보다는 말의 양은 많이 줄었지만 그대로 또 발동이 걸렸다. 다행히 아이들의 게임과 스포츠를 보느라 이리저리 내가 움직여야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지랄 같은 말잔치는 다 표현을 할수없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이 말한다.

” 우리 와이프는 여러 엄마들 중에 서있으면 정말 완전 포스가 남다르게 느껴져.. 내가 그렇게 봐서 그런지는 모르겟지만, 너는 정말 포스가 있어.. 근데 제발 좀 쓸데없는 말좀 하지마.. 뭐 물어보지도 않는 말을 너가 왜 앞서서 해..”

20여년전 옛 친구의 충고와 거의 동일한 말을 남편에게 다시 재방송처럼 들었다. 꼭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요즘 가수가 리메이크한걸 듣는 기분이랄까.. 아.. 이건 정말 메세지다.

다른 세월의 같은 메세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가? 여렀을때는 생존으로 그랬다고 치고, 친구도 사귀어야하고 그냥 뭍혀지기 싫고 .. 여러가지 이유로..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왜 이렇지? 한두가지 뚜렷한 이유라기보다 여러가지 이유가 다 섞여있다. 우선, 난 생각이 많고 아이디어가 많이 있다. 이게 내 강점이겠지. 깨달음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 런걸 어디다 나눌때가 없다. 아니지 , 나눌때가 없다고 하면 안되고, 나누고 싶은 욕구가 있다. 무당이 되니, 상담자들에게 그들의 인생의 화경을 보고 메세지를 말하는것이 너무 좋다.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무당이 되니 여러가지 보고 느끼고 깨닫는것이 너무 많은거다. 이걸 다 나누고 싶고 공감을 같이 느꼈으면 하는것도 있다. 그러니 말을 주절주절하고 싶어하는것 같다.

글쓰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실제로 난 글을 쓸수없는 트라우마가 있어 글을 쓰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솔앤스터디 공동체에서 마마베어 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로 구글 에드센스 승인을 받겟다는 목표로 100일간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프로젝을 하면서 나의 글쓰기 트라우마의 벽을 조금씩 넘어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개인을 표현하는 글을 최대한 쓰지않고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적인 주제로 썼다. 결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보이고 싶지않았다. 그러나 점점 글 쓰기를 하면서 내안에 있는 표현의 욕구가 나를 막고있는 장벽이 허물기 시작했다. 또한 글을 써나가면서 내가 그토록 갈망하는 타인으로부터의 동감과 공감의 욕구가 내안에서의 정리와 나의 생각을 쌓아가는 쪽으로 변해갔다.

변화

요즘은 생각을 하면 글쓰기를 하고 싶어한다. 생각을 글로 쓸때 나의 생각이 오롯이 그대로 표현되지않을때가 많다. 깨달음은 주로 텔레파시처럼 오는데 정확한 단어로 표현해야하는 글쓰기는 수채화의 느낌을 정교한 펜 댓생으로 전환시키는 기분이 든다. 나의 표현을 정확하게 해주는 단어를 찾는 작업은 가끔 나를 쥐어짜는 기분이 들게도 한다.

글쓰기의 횟수가 늘면서 나의 쓸데없는 말 잔치는 점차 줄어들었다. 더이상 내가 말을 해야할 이유를 못찾는것 같다. 나의 깨달음을 알려주기위해서 나하고 스타일도 안 맞고 삶의 방향도안 맞는 사람들에게 괜시리 전화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들의 안부를 뭍는다고 하면서 실상은 나의 생각들을 같이 나누고 싶은 경우가 더 많았던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의 이득

글쓰기의 힘은 나의 쓸데없는 광대짓 같은 말잔치만 줄인게 아니다. 나의 에너지를 모으는 힘도 느낀다. 베터리에 충전된다고 할까? 뭔가 나의 힘이 충전되는 기분이 든다. 실상 , 난 공부하는 학자인데 학자는 말보다 글로 자신의 생각를 남길때 힘이 있다. 우연히 유트브 동영상에서 법정스님의 인터뷰를 봤다. 스님께 어떻게 책을 집필하게 되셧나고 물으니 스님의 답이 나를 위로한다.

” 말은 하고 싶은데 중이라 아무나 붙잡고 말을 할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끄적거리게 되었는데, 그게 책이 되었어.”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시절이 좋아서 이제 나의 생각을 글로 쓰면 책만 내는것이 아니라 소득도 되는 시절이다. 그리고 글을 쓰니 이제 나의 주저없는 말을 들어줘야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쓸데없는 빚도 질필요가 없고 더이상 나에게 맞지않는 광대짓과 같은 아무말 대잔치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해야하는 말도 안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굳이 이런걸 말로 해야하나. 이런 생각까지 든다 . 사람은 참 여러모로 간사하다.

나의 아무말 대잔치는..

처음에는 살기위해서 말을 해야했고, 후에는 외로워서 말을 하고 동감을 얻어내기 위해서 말을 했다. 가만 보니 언어를 전달하기 위한 소통의 말보다는 나의 말의 대부분은 나의 마음을 헛텃함을 달래기위한 수단이었다. 누가 나랑 동감해주면 안되나, 누가 내 말 좀 들어주면 안되나.. 늘 난 나의 마음을 타인의 동감과 동정을 통해 달래고 싶었던것 같았다.

묵상

성경의 한구절이 생각이 난다. 기도로 불임을 극복하고 아이를 낳은 해나라는 인물이 있다. 이 해나는 고대 근동의 시대의 문화에의 관점으로 보면 불행한 여인의 조건을 가졌다. 아이를 낳을수없어 그 지방의 유지인 남자의 첩으로 살고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해나를 지극히 사랑했다. 그러니 첫 번째 부인의 시기와 질투는 당연했다. 명절이나 절기가 되면 첫째부인은 해나의 가장 아픈 부분을 자신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과시하면 그녀를 멸시했다. 그럴때마다 해나의 마음은 무너졌다. 이럴때 마다 , 해나의 남편이 해나를 어떻게 위로 했는지 성경에 나온다.

” 너는 나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느냐?”

해나의 속상한 마음은 모르는것은 아니나 해나를 향한 남편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내린다.

늘 성격을 읽을때, 이부분이 항상 마음에 쿵 하고 와닿았다. 단순히 해나의 남편이 해나에게 말한거라기 보다는 내안의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으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다른 사람들의 공감이 필요하니? 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하니? 나와 너 하나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니?”

깨달음

해나의 남편의 말이 나의 영혼에 위로가 되기 시작한건 아마 글쓰기가 손에 붙기 시작한 후부터인것 같다. 또한 우리 루비가 천사가 된 이후 부터이기도 하다.

쓸데 없는 말잔치가 얼마나 나에게 에너지를 빼았는일인지도 요 근래 느낀다. 한방향의 말이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되는건지도 요즘 뼈저리게 느낀다. 듣는자도 힘들고 말하는자도 힘든것이 한방향 소통이다. 어제도 한방향으로 말을 해야하는 맴버쉽 강의를 다 이어가지 못했다. 나의 에너지를 쥐어짜는 기분이 들어 더이상 이어가지를 못했다.

막를 내리는 쇼. (Show is closing)

이제 거의 반백년을 이어온 나의 쓸데 없는 말잔치는 이제 막을 내린다. 나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준 나의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의 이 기나긴 쓸데없는 말잔치를 들어준 지인들의 얼굴도 스친다. 다들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나에게

안녕,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잔치는 끝났으니 입었던 복장을 벗어도 되.

쓸데 없는 말잔치를 하느라 그동안 입고 있었던 복장들을 하나씩 벗는다.

가뿐하다. 시원 섭섭하다는게 이런거겠지.

말잔치는 끝났다. 이제 나는 어떤 작전으로 나의 남은 삶을 살아볼까? 지금은 글쓰기인데… 예전 법정 스님의 인터뷰 끝자락의 말씀이 생각난다.

” 근데 이제 이 글쓰기도 그만할까봐.. 뭔가를 다 남긴다는게 의미가 없는것 같기도 해..”

난 아직 법정스님의 말씀이 와닿지 않는다. 아직까지 난, 내안의 것을 보여주고 싶기는 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나 법정스님의 말씀이 어렴풋하게 뭐일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깨달음을 건너 뛰고 싶지않다. 여러권의 책을 내신 후에 오롯이 배우신 법정스님의 삶의 지혜를 나도 나의 방식대로 배우고 싶다.

기대 된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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