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무당
무당이되고 자주 하는건 나를 들여다 보는 일이다. 신의 기운과 늘 싸우는? 세상을 살기위해 만든 나의 겉옷 같기도 하고 속옷 같기도 한 나의 모습을 많이 들여다 본다.
분노
몇달 전에 큰 아이들과 아무일도 아닌데 전 시누이 , 그러니까 아이들의 고모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화는 겉잡을 수없는 화산폭발이 되어 한순간 큰 아이들의 마음에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주었다. 큰 대환란이 지나가고 감정의 소각 상태에서 하나씩 나의 마음을 살펴보았다. 그저 화가 나기만 했다. 당연히 불같은 화를 낸 사람은 나고 3000 도 이상의 불기운으로 가슴의 화상을 입은 것은 아이들이였다. 대학생이 되고 20살이 되어도 아직도 내 앞에서는 감정적으로나 여러가지가 아기들인데, 또 큰 상채기를 냈다. 왜 이렇게 애들 고모 이야기만 나오면 난 이렇게 예민해지고 화가 날까? 표면에 들어나는 것은 애들 고모의 철없는 행동들인데 비록 이런 행동들은 반백이가 넘은 그녀의 나이에 비해 참으로 무례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까지 화를 낼 이유는 아닌데 싶었다.

창피함
무당으로써, 엄마로도 그리고 한 인간으로도 참으로 챙피했다. 뭐냐? 신에게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슬쩍 물어봤다. 솔직히 물어보지 않았다. 내 행동 자체가 벌써 신제자로써는 챙피해서 물어보기도 민망했다. 그렇지만 이럴때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늘 100프로 나의 편이다.
” 아이고, 속 상하지..우리 아기..”
왈칵 눈물이 나오면서, 복잡한 마음이 든다. 아직도 이렇게 병신같은 면이 있나 싶기도 하고 할머니들에게 신에게 죄송하기도 하고.. 간단하지않는 마음들이다.
왜이러냐? 그 년이 도대체 뭐라고?
거의 20년전에 이혼한 사람의 동생이라는 사람때문에 지금 나의 생활이 흔들린다는게 너무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어느곳에 얽혀있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불구덩이 같았고 식지를 않아 잠시 기다림으로 마음의 시간을 벌기로 했다. 잠시 덮어두자.
들춰보기
조금씩 들춰본다. 왜 나는 이 사람한테 이렇게 화가 날까? 이렇게 정도 이상으로 화가 나는 건 그 사람의 행동에도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녀의 경솔한 행동앞에서 제대로 말을 못햇던 나의 모습에 내가 더 화가 나는것 같았다.
아니 왜 니 이야기를 못해? 과거의 나에게 내가 말을 한다. 왜 주눅 들어있어?
액스 시누, 그러니까 큰 아이들의 고모는 참 이쁘다. 이목구비도 시원시원하게 생기고 체질이 살이 찌지않는 체질이기도 하고 , 아무튼 참 외모가 시원하니 이쁘게 생겼다. 또한 성품도 온순한 편이고 가족을 잘 챙기는 사람이다. 이민가정의 막둥이로 태어나서 다섯살에 미국에 와 영어가 안통하는 이민 1세대의 부모아래 잘 큰 1.5 세 에서 2세 사이의 사람이다. 음식은 한국음식을 좋아하지만 이민 세대의 부모아래에서 제대로 학교 생활이나 여러면을 서포트를 받지못해 마음속에 여러가지 고민을 않고 살아야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첫 만남
이 액스 시누를 첫 만난 때를 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누가 봐도 참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 같았다. 거만하지않는 자존감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공통의 대화를 찾기가 힘든 만남이었다. 그녀의 궁금증은 왜 자기 둘째오빠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여러면으로 큰 차이가 나는데 , 솔직히 자기는 이해가 안된다고 첫 만남에서 물어보기도 했다.왜 나 같은 사람이 많이 부족한 자신의 둘째오빠를 좋아하는지.. 지금 돌아보니, 폴린( 시누 이름) 은 솔직했던것 같다. 그녀는 지금이나 그때나 자신의 감정에 당당하고 솔직하다. 미국년이라 그런지 🤣😃😅.. 욕하는 나도 지금 어느덧 폴린의 그런 면이 있기도 하다.
적극적 도움
그런 가족의 만남뒤에 나의 첫 결혼은 나의 필요에 의해서 여러면으로 빨리 진행이 되었다. 그때 미국에 간지 일년도 안되는 시기이니까 언어나 여러가지가 나에게는 아직 생경할때이다. 아는 친구도 없고 나에게 지인이라는 사람들은 다섯손가락안에 들정도였으니까. 나의 첫 결혼은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이 복잡한 마음은.. 또 생각하니까 성질이 나네.. 아무튼, 사랑이라는 것 보다는 나의 필요를 위해 억지 사랑을 만들어내서 실은 나의 필요에 따라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한 억지사결혼인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첫 결혼만 생각하면 수치심이 밀려온다. 아마 그때 솔직하지 못한 나의 마음이 들켜서 그런거 아닐까 한다.
아무튼 그때 그시절, 난 그런 결혼을 했다. 결혼이지만 내쪽의 사람이 너무 없고 한국에 있는 친정엄마가 비자가 나오지 않아 미국에 올수가 없었다.그러니 결혼을 크게 하기보다 적절하게 해야했다. 미국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나, 끌고다닐 차도 없는 나는 어쩔수없이 모든 일을 다 시누에게 맡길수 밖에 없었다. 폴린은 평생 나의 전 남편 , 그녀의 둘째 오빠의 일을 돌봐주엇기 때문에 우리의 결혼의 모든 일을 일사 처리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혼 식장, 나의 신부 메이크업, 결혼 드레스 등 결혼에 필요한 모든걸 하절차를 정했다. 하다 못해 결혼식때 쓰는 케이크 까지..물론 최종 결정은 내가 했지만 거의 모든일은 폴린에 의해 다 정해졌다. 그때 내가 스스로 나의 의지로 나의 결혼에 필요한것을 정한것은 ” 한복” 이였다.
한복 한벌
실상 나는 늘 한복이 입고싶었다. (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무당이라서 그런것 같다. ) 늘 한복이 입고 싶엇는데 그당시 20대 내가 한복을 사서 입고 다닐일이 거의 없어서 한국에 있을때도 한복을 사지 않았다. 일년에 한번 입을 까 말까 하는 옷을 입고 싶다고 사는게 이상했다. 그러나 늘 이 한복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결혼은 내가 평생 입고 싶었던 한복을 사는데 너무 딱 들어맞는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난 실상 웨딩 드레스보다는 한복을 사는것에 많이 신나했고 전 육영수 여사님 한복을 만드신 분이 한다는 한복집에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한복을 주문했다. 보통 그당시 새색시 한복은 초록 저고리에 빨강 치마인데 나는 분홍색에 남색의 한복, 그러니까 결혼 한복이라기 보다는 뭔가 궁중의 마마 님같은 옷을 했다. ( 지금도 생각해보니 이게 무당이 되는 사람들의 한 표현이기도 한듯하다. )
남의 결혼 같은 내 결혼

지금도 난 나의 첫 결혼을 생각하면 폴린 얼굴이 보름달 처럼 떠오른다. 나의 결혼이기 보다는 나의 첫 결혼은 시누가 자신의 오빠를 위한 최대한의 노력? 선물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나의 결혼이라기보다 폴린이 오빠를 위한 선물 같다. 난 그 선물옆에 그냥 서서 사진 한장 찍은 기분이 든다. 그때 결혼 사진 찍는 분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너무 폴린이 자기쪽 그러니까 시댁 쪽 사람들 사진을 이렇게 저렇게 찍어달라고 하니까” 신부님 먼저 찍구요..” 라고 말을 한마디 해서 폴린의 적극적 개입에 무안을 주었다. 결혼의 꽃은 신부라고 할수있는데 나보다 자신의 식구, 엄마 아버지, 조카및 오빠위주의 사진을 계속 찍어달라고 하니 , 사진 작가 아저씨가 한마디를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폴린의 행동보다는 내 쪽에 가족이라고는 단 한명도 없었으니 신부를 대신해서 말해줄 사람이 없어 상대적으로 폴린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을수도 있지 싶다. 분명 내가 신부이고 내 결혼식인데, 난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남이 벌려놓은 잔치에 내가 신부인척하고 앉아있어야되는것 같았다. 그 당시 신부 대기실에 있을때 사진 기사 아저씨가 사진을 여러장 찍으셨는데 그때 찍은 나의 사진이 난 나의 결혼 전체 사진중에 가장 맘에 들었다. 멋드러지게 결혼 앨범은 잡지 처럼 만들어졋고 멋있엇지만, 나에게는 내것이 아니였다. 그때 난 내 결혼식에 음식이 어떤 음식이엿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먹었던 음식도 나중에 다 토했던걸로 기억이 난다. 장소도 멋드러졌고 음식과 케잌 및 여러가지가 작고 소박한 결혼식이지만 고풍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모든건 다 폴린이 자기 오빠에게 주는 선물이였지 나의 결혼식은 아니였다.
세 사람이 같이 사는 집
그 후 나의 결혼 생활은 내가 무엇을 먹을까 그리고 무엇을 볼까 ( 비디오) 외에 모든 삶의 중대사는 폴린하고 의논이 되는 구조가 같다. 이사를 할야할때도, 차를 바꿔야할때도, 모든 작고 큰 결정은 늘 폴린이 그 속에 있었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우리의일을 관여한건 아니다. 실상은.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나는 미국생활이 처음이니 여러가지가 모르니 아무래도 자연스런 “을” 이 되는것 같았다. 나의 첫 차도 폴린이 타던 차를 샀다. 폴린이 타던 차를 나에게 팔았다.
아이를 낳고 나도 일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난 ” 자립” 이라는걸 하고 싶었다. 이사를 해야할때 난 시누가 우리의 금전적인걸 다아는게 너무 불편했다. 그때 폴린은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그녀의 남편은 대출일을 부업으로 하고있었다. 당연히 폴린은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난 왜그렇게 그게 싫었던지.. 처음으로 ” 노” 를 했다. 이 ” 노” 때문에 몇번의 대 전쟁 같은 싸움이 있었는지 모른다.
이 싸움이 시작되서 나의 첫 결혼 생활 5년에서 3년 6개월은 절교 상태를 왔다갔다 했다. 그리고 난 그녀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그 후 일년뒤에 했다. 이혼으로.
난 누구와 결혼했을까? 폴린인지 전 남편인지.. 이 두사람의 어느 중간이었는지.
그래도 한복

이혼을 결정하고 살던 집에서 전 남편과 살던 집에서 나는 내가 나왔다. 나올때 거의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한복” 은 가지고 나왔다. 결혼과 연관된 모든 것은 불살라 지르고 싶었던 기분이었는데도 이 한복은 남달랐다. 한복은 결혼의 부산물이 아니라 내가 너무 그동안 가지고 싶었던걸 결혼이라는 제도덕분에 가질수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한복은 나중에 탈북해서 미국에서 결혼하게 된 아주 어여쁜 신부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녀는 나의 한복 이야기는 모르지만 , 한복에 대한 나의 마음을 아는 듯이 내가 선물로 준 그 한복을 나만큼 좋아하고 고맙고 이쁘게 입었다.
폴린의 가족
이혼 후 세아이의 육아와 친권은 나에게 있었고 기저귀를 다 찬 세아이를 내가 혼자 다 키울려니 너무 벅차 잠시 한국 친정에 어린아이들을 맡겨 두어야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큰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한 2년정도 아이들이 한국에 있엇는데 , 난 그때 아이들 용품이나 길가에 지나가는 스쿨 버스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이 보고 싶고 마음이 아플때였다. 그러나 그 당시 전 남편은 폴린의 가족과 함께 디즈니 크루즈를 다녀왔다. 점심값 아껴서 자주 전화하고 매달 편지 쓰고 아이들 옷을 사서 때에 맞추어서 소포로 보내는 나와 달리 전남편은 이혼과 함께 폴린의 가족이 된듯해보였다. 어떻게 그녀의 가족과 일주일 간격으로 태어난 자기의 아들과 나이가 같은 조카 와 함께 디즈니 크루즈를 갈수잇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간다. 지나가는 내 아이 또래의 아이들만 봐도 나는 죄책감으로 잠을 설치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위해 담배 두갑을 피우면 미친듯이 일을 해댓는데, 아이들 애비는 폴린 가족과 함께 디즈니 크루즈를 다녀왔다고 한다. 그의 열쇠고리에 귀여운 미키마우스와 디즈니 캐릭터의 키링이 주렁주렁 달려있는걸 볼때 그걸로 대가리를 까부수고 싶을정도로 화가 났다.
나는 폴린과 결혼했네
지금 글을 써내려가면서 깨달았다. 아.. 난 폴린과 결혼하거였구나.. 그걸 인제 알았다. 그래서 난 폴린한테 화가 나는 구나. 왜냐면 그녀가 결정자였으니까. 나의 첫 결혼의. 세월이 가고 첫 남편도 재혼을 하고 나도 재혼을 해서 아이도 낳고 우리는 서로 잘산다. 세월이 가니 사람의 마음도 늘거워지는지, 첫 남편이 그래도 자기하고 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잘 사니 마음이 좋다. 가끔 큰 아이들의 문제로 전화 통화를 하면 서로 잘 사니 좋다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아직도 난 폴린 하고 전화를 하거나 이야기를 하면 나의 마음 끝이 떨리면서 긴장 상태가 된다. 그리고 뭔가 차오르는 분노를 참기위해 숨쉬기를 여러번 해야된다.
물어보고 싶지도 않은 사주
무당이 되면서 처음으로 나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훓어보기 시작했었다. 가족 친구등, 내가 아는 사람들을 하나씩 살펴 봤다. 점을 보면 내가 그동안 알아왔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영혼의 모습을 볼수있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그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그래서 어느 누가 없나 하고 이 찾듯이 샅샅이 사람들을 찾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폴린만은 예외였다. 궁금해서도 안되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굳이 이렇게 내가 이런 마음을 품을 필요가 전혀 없는데 왜그럴까? 큰아이들한테도 잘하고 , 많이 모자라는 큰 아이들 아빠를 대신해서 아이들에게 살뜰하게 챙겨주는데, 그냥 그러려니 해야되는데, 왜이런 마음이 쓸데 없이 드는지..
화 나는 진짜 이유
아마 내가 진짜 폴린을 생각하면 이렇게 과도하게 화를 내는건 폴린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내 모습같지않고 너무 화가 나는것 같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 그시절 폴린의 도움을 받았을때, 난 왜 그렇게 주눅이 들었는지, 왜 그녀에게 내가 원하는걸 제대로 표현을 못했는지, 그녀 앞에 있는 나의 모습이 참을수없이 화가 난다. 자신의 존재에 당당한 폴린앞에 나는 뭔가를 크게 숨겨야했다. 내가 처음 폴린을 만난 날,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 어떻게 우리 오빠를 좋아할수있어요? 11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고, 케이트랑 이렇게 다른데..”
” 나이가 뭐가 상관이 있어요, 그리고 차이가 뭐가 그리 중요하나요. 난 오빠의 순수함이 참 좋아요..”
난 그녀에게 모든 조건과 차이를 넘는 순수한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거짓 가면을 쓰고 답했다.
” 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영주권이 없어, 너의 오빠는 참 만만해서 그냥 결혼이라는걸 쉽게 할수 잇을것 같아. 난 영주권만 나오면 내가 가고 싶은 학교도 좀 싸게 다닐수잇고.. 지금의 이 피곤한 유학생활에서 벗어날것 같아. 그래서 난 니네 오빠가 필요하다. “
난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이렇게 말했으면, 난 폴린에게 이렇게 불 같은 화가 나지않을 듯하다. 그녀가 알고있는 감춰야하는 나의 모습이 없으니까.
거짓 사랑을 아주 고상하게 말한 나의 모습을 폴린은 다 봤다. 기억한다. 그래서 수치심이 든다. 그래서 화가 나고 그녀가 더 이상 나의 삶에 다가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녀의 이름이 떠 오르면 , 감춰야하는 나의 모습도 같이 떠오른다.
초라한 나
그런 거짓말을 한 나를 본다.
” 그럴수도 있지, 너가 얼마나 힘들었어, 돈벌랴 공부하랴.. 학비도 제일 비싼데로 와서 기관지염에 천식에 얼마나 힘들었어. 그럴수있지.. 한국에 가려고 해도 오지말라고 하고.. ”
내가 이해가 된다. 그럴수있지. 힘들어서 잠시 세상에 기댈 수있지. 세파에 같이 흘러 흘러 그리 살수있지..
그렇지만 27여년전 , 자신의 삶에 당당하고 담백하게 서 있는 폴린 과 옆에 거짓말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나는 수치스럽고 너무 초라하다. 그녀와 가진것을 비교하는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내보였고 ,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을 그대로 보여줬고 나는 나는 꽁꽁 포장을 했다. 그때의 그것은 또 포장을 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분노로.. 알수없는 큰 분노로 나의 수치심을 불태워버릴려고 한다.

그래도 , 나
그래도, 난 나의 편이어야한다. 수치심을 분노로 감싸고 다시 포장을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건 더 나를 추악한 모습으로 계속 만들어간다.
“깨달았으면 됬다. 이제 그만 놔주자. 뭘 그렇게 너에게 가혹하니..”
무당이 되니, 나의 모습들이 이렇게 사진들이 찍혀나오는 종잇장처럼 하나씩 들여다 보인다. 안 과 밖이 다른 모습을 거의 강박에 가까울정도로 싫어하는 나의 모습들.. 그게 뭐라고.. 이혼도 하고 시댁하고 껄끄러울수도 있지.. 그런거 하나까지 다 마음 한쪽구석에 넣어놓고 너를 그렇게 힘들게 까지 하니.. 사는건 다 허물이고 살다보면 다 자신만의 쓰레기들도 만드는건데..
“누가 그렇게 자신에게 당당하고 솔직하게 사는 사람이 있어? 누가 그렇게 다 자기의 마음을 다 알고 살아? 사랑이라고 착각을 얼마나 해? 누가 그렇게 결혼을 죽도록 사랑해서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이렇게 저렇게 맞추는거지. 그런게 중매 결혼이지.. 그러면서도 사는게 인생이야.. “
나의 마음한쪽에서 나에게 이야기한다. 신은 아니고 나의 이성이 가장 논리적인 이성이 말을 한다. 나의 이성은 끊임없이 단호하게 주장한다.
” 나는 끝까지 너의 편이여 한다. 너를 가장 끝까지 너 답게 너의 인생답게 편들어야한다. “
무당이 되니
무당이 되니, 잠신의 옛과거나 나의 삶의 한부분을 들여다 볼때 여러가지 생각의 결과 갈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묵상과 생각의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것 같다. 작은 감정과 나의 생각의 시작은 어디일까, 어느 근원에서 이런 것들이 왓을까, 어떻게 생각을 해야할까.. 난 이런것이 싫지않다.
단순히 액스 시누년 하고 욕해버릴만한 일도 난 이런 사색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상황을 본다. 이런 무당이 된 내가 좋다. 무당이 되어 신과 소통하고 접신하고 점을 보는것도 좋지만, 이런 사고의 폭이 깊어지고 넓어진것도 좋다.
무당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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