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를 모를때가 있다. 가끔 나조차도 내가 두려울때가 있다. 누구지? 나의 껍질과 속이 다름을 느낄때라고 해야할까? 가끔 영화속에서 나오는 장면이 나의 모습일때가 종종있다. 미친건 아닐까? 무당이 되고 가끔 드는 생각이다.
반복되는 고민

교회를 다닐때도 무당이 된 이후도 난 늘 같은 고민을 하는것 같다. ” 어차피 인간들은 무엇하나에 미쳐서 사는거 아니야? 누구나 다 알고보면 미친년 미친놈 아닐까?” 이런 고민은 교회를 다닐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사는것과 일상 생활의 괴리를 느낄때 이런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기준점을 다르게 하고 싶은 나의 내면안에서 오는 욕구와 내가 외부로 표현하는 것들과의 간극의 갈등이 너무 힘들었다. 예를 들면, 난 교회 다닐때 십일조를 꼭 했다. 안하면 하나님의 돈을 사기 쳐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였다. 일주일에 주일 성수를 하겠다고 아이스크림 집을 할때도 큰 대목인 일요일에 그 가게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가게 문을 닫았다. 모든 수입의 거의 3분의 일이 일요일 오후에 나오는 동네 아이스크림 집의 문을 과감하게 ” 하나님의 날” 이라는 명목으로 문을 닫았다. 비즈니스의 상식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 같으면 일요일에 더 활짝 문을 오래, 먼저 빨리 열었을텐데 , 그때는 난 그렇게 살아야되는 줄 알았다. 그러니 그 당시 빡빡한 살림을 해야되는 내가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는 말로다 못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그렇게 고민을 했을까 싶다. 이왕 결정내린것은 그렇게 하면 되겠지, 또 그런 결정한 대로의 결과를 받아드리고 살면 되지, 그런 에너지의 삶이 있겠지 하면 될걸, 결정한 행동에 대한 불안감을 왜 등에 안고 지고 살았는지 .. 그럴거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될걸..
이 글을 쓰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긴 하지만, 20년전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지금도 한다. 영적인 무당이 되면서 , 난 또 남들에게 설명할수없는 고민을 한다. 남들과 다른 시각을 가져야한다는것에 대한 고민이다. 글을 쓰면서 옛일을 반추해보니 고민거리가 아닌걸 고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것을 보니 다른사람과 삶의 기준점정도가 아니라 각도가 다르다. 그걸 그냥 받아드리면 되는데 , 나의 뭔가가 이런 변화를 머뭇거리느것이 있다. 아마 내면에서는 ” 이러다 망하면? 이게 아니면? “
그런데 사실 인생에 망한다는 의미가 잇을까? 무당인 나에게 , 그리고 나의 딸 루비의 삶과 죽음을 같이 한 내가 ” 망한다?” 라는 말이 뭔가 이상하다. 망한다는것이 어느 기준점일까? 우리의 삶은 모든것이 실험이고 배우는것인데, 뭐가 망한다는걸까.. 뭔가의 기준점을 두고 , 어떤 일정한 시각에서 봐야만 그게 망한거고 실패한건지, 삶을 배움의 과정, 나의 삶의 실험실이라고 생각하면 ” 망했다, 실패했다” 는 없는거다. ” 목적점, 기대치수” 가있어야 ” 망했다. 실패했다” 가 성립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럼 나의 삶의 목표점과 기대점은 무엇인가?
나는 많은것을 경험하고 싶다.사람들이 다 생김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고 같은 영혼이지만 각자의 삶의 서사가 다 다르다. 그래서 그 다른만큼 나에게 지금 주어진 시간에 가장 많은 경험을 하고 배우고 싶다. 또한 가장 본질에 가까운 삶을 살고 싶고 신과 가장 많은 소통을 하고 싶다. 이게 이번나의 생의 목적이고 기대치라고 할수있다. 그럼 경험하는데 어떤 수준이 있을까? 경험에도 ” 수준” 이라는것이 있겠지. 여행도 여러가지 여행이 있다. 배낭 여행, 호텔 여행, 캠핑, 글림핑, 등등..
솔직히 너무 삶이 불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또 너무 편해서 본질의 소중함을 모르고 싶지도 않다. 사색을 게으르게 하는 잡다한것으로 쌓여있기도 싫다. 나와 내 가족의 기본적인 삶의 안정이 흔들리는건 싫다.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음악과 책과 나의 문화생활을 못하는건 싫다. 가끔 먹고 싶은 달달한 커피를 부담스러워하는 재정적인 위치도 싫다. 본질에 관심없는 물질만능에 쪄들어있는 인간의 모습만 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위치에 있고 싶지도 않다. 다 큰 아이들이나 나의 아이들이 나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있고 싶지않다. 또한 아이들에게 재정적으로나 감정적으로도 어떠한 부담이 되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하나씩 써 내려가니, 신과의 모호한 갈등의 간격이 조금씩 좁아져간다. 신기하다. 이래서 글을 쓰는 맛이 있는가 보다. 머리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씩 문자로 정리 배열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정리가 되어진다. 고민의 실타래들이 어느새 풀려 더이상 고민이 안되는경우가 허다하다.
변하지 않는 나
나는 변하지 않는다. 20여년전에 성경의 토씨도 하나씩 다 담아서 나의 삶속에 녹아내리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었다. 지금은 샤만, 무당으로써 나에게 오는 영들과의 소통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다가선다.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신성이 그득하길 원한다. 신의 눈으로 현실의 만들어 가고 싶고 신이 나에게 하는 일을 내 삶에서 목격하기를 원한다. 몇 주 전 바닷가에서 나의 방울 한쪽이 포도송이처럼 우두둑 떨어진일은 아직도 너무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쇠로 연결되어있는 방울뭉치들이 그렇게 우수수 떨어질수 잇는지, 방울의 연결고리에 끊어짐도 없고 흘거운점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될수잇는지, 남편도 너무 신기해 했다. 나의 삶에는 이런일 투성이였다. 교회에 충성분자, 열심당이였던 나에게도 신기한 일이 한두개가 아니여서 담당 구역장님이 늘 나를 ” 특별한 분”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아예 무당이니 이런 ” 특별한 일” 은 어쩌면 당연한거 아닐까.
독특한 애

나는 ” 독특한 애” 라는 말을 너무 어렸을때 부터 들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 5학년때까지 거의 말이 없고 극 내성적이 아이였은데도 불구하고 가끔 같은 짝궁으로 앉은 아이에게 나의 생각을 말하면 늘 듣는말이 ” 넌, 참 특이하다” 라는 말을 늘 들었다. 그때는 그말이 왜 그렇게 싫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 넌 참 독특하다” 라는말이였는데 워낙 가장환경이 남들과 너무 다르다는 열등감에 휩싸여서 그런지 이 말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 독특함” 보다 ” 평범함” 을 너무나 갈망했었다. 지금이야 이해가 된다. 신가물, 무당은 어렸을때부터 있는것이니 당연히 독특하고 당연히 특이한거다. 그러나 그때 내가 상상이나 했나. 내가 무당이라는걸.
신 욕심
” 신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되” 이런말을 우연히 다른 무당선생님들의 대화에서 들었다. 신에 대한 욕심, 신제자는 신 욕심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 내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아… 나는 신욕심이 있는 사람이구나. 교회를 다닐때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맘에 흡족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람처럼 살까, 어떻게 하면 이 얄팍한 현실을 넘어서는 넉넉한 신성이 있을까 를 부단히도 구했던것 같다. 그래서 답답한 기도가 싫어서 방언을 구했고, 방언을 받았다. 선교현장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삶에서도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늘 그런 걸 막여하게 구하니 선교사같은 삶을 선교현장이 아닌 교회옆에서 살아야하는 선교회 코디네이터일을 하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이런걸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한국 전통신앙에서는 신사람, 신욕심이 많은 제자인거다. 무당이 되니, 신과 더많이 소통이 하고 싶어진다. 어떻게 하면 신의 소리를 더 들을수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냥 전해지는 몸통이 될까? 어떻게 하면 신의 원력을 더 몸으로 느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모르는 경험을 더 할까? 신에서 오는것과 우리가배우고 알고있던 차이를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할까? 이런 생각이 지금은 24시간드는것 같다.
관심없는 것들
가만 보니 관심이 없는것들도 같다. 교회 다닐때도 난 그렇게 직분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열심으로 다녔던 큰 교회에서 ” 케이트 이제 권사 될때 되지않았나?” 하는 권유를 받았다. 이미 사실 구두로 누구누구 집사님 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건 교회다니면 다 하는 소리이니까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권사는 좀 달랐다. 그걸 하는 과정도 있고 , 뭔가 완장 찬 느낌이랄까.. ” 아뇨, 전 절대 그런가 안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교회생활을 꽤 오랜 한 것 치고 가장 화려한 찬양부를 난 싫어했다. 예배 하기전에 의례적으로 찬양팀이 나와 찬양도 하고 예배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 왜 그렇게 난 그 조명과 온 교회의 성도들의 주목을 끄는게 부담스러운지.. 내가 제일 부담스러워했던 교회일중에 하나는 모든 시선을 끄는 찬양팀이였다. 앞에서 나와서 노래를 하고 율동을 하는것이 정말 창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큰 행사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뭘 했던 기억도 나기도 하는데 , 난 늘 창피함으로 기억된다.
무당이 되고서도 같다. 난 왜 그렇게 무당이 화려하게 옷을 입고 사람앞에서 뭐라고 하고 가락을 하는것이 부담스러운지.. 저런걸 하는게 무당이면 안하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칼을 혀에 대고 얼굴에 긋고 장구앞에서 머리를 미친것 처럼 돌리고 하는 행위를 보면, 너무 부담스럽고, 저런걸 어떻게 하나 싶다. 이런 고민을 몇년하는 중에, 우연히 무당생활을 30년이상 하신 분, (나는 개인적으로 이분을 훈장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에게 ” 선생님, 저는 가락을 못하는데 , 그래도 무당이라고 할수있나요?” 라고 물어봤다. 그러니 그분이 참 의외의 대답을 하신다.
” 전 이제 무당은 가락을 하지말라고 해요, 가락을 하는것 민속민요를 하는 거지 무당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건 민요가수가 하는거죠. 무당은 신의 공수를 내는거고 조상신을 실는거가 무당인데 그 가락을 배운다고 신경을 쓰면 조상이 안 실려요.. “
그 분의 말은 나에게 샘물과 같았다.
” 아 ! 그래요? 그렇죠?”
무당은 신의 소리만 들으면되지, 내가 왜 저 장구를 쳐야하는지, 저 민요 창가를 해야하는지 , 너무 부담스럽고 이해가 안되었다. 가락을 안해도 무당이라고 하니 너무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난 이스라엘 종교를 믿었을때도, 우리나라 토속신앙 무당이 되었을때도 이렇게 남들 앞에 나서서 창를 하고 시선을 끄는걸 안 좋아한거다. 참 다른환경에서 공통점을 본다.
관심있는것들
반면에 관심있는것들이 있다. 교회에 열심분당이엇을때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두가지였다. 성경공부와 선교, 그리고 간간히 열리는 구역예배가 그리 재미났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진리에 대한 탐구 그리고 그 말씀에 비추는 나의 하루가 참 깊고 재미있고 나의 삶의 기준점 같았다. 나의 성경공부의 사랑은 교회를 넘어서 나를 아는 언니들의 모임에까지 연결되었다. 그래서 종종 만나는 지인들하고도 성경공부를 하곤했다. 선교에 대한 사랑은 멈춰지지가 않았다. 너무 긴박하고 박진감이 있다.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바로 나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삶이 얼마나 멋진지. 20대 후반, 한국에 있을때, 선교 훈련에도 열심이었고 선교여행도 가고 그리고 외부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을 우리집에 초대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그당시 10/40 윈도우라는 명제의인터콥이 처음 시작할때인데, 이슬람지역에서 오신 홍 선교사님을 우리집에 모셔서 짜장면을 먹고 청년들과 선교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때의 시간은 지금 회상만 해도 너무 즐겁다. 선교하면 ” 미션” 이라는 안네오 모리꼬 음악 감독이 주제 음악을 만들어 유명하기도 한 영화가 떠오르는데 아직도 그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한구석이 메여온다.

무당이 되니 가장 관심있는것은 구전구전으로 내려오는 자신들의 경험담들과 신화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각 무당 선생님들이 겪으신 이야기들 , 그리고 배운 이야기들이 꿀맛 같다. 그래서 관련된 서적들을 받기도 하고 구입하기도 하고 각 나라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와 토속 신앙에 관한 책은 발견하는 즉시 사는 편이다. 무당이 되니 점을 보는것도 참 재미나다. 상담자의 따라 다르기는 하는데 나에게 꼭 무슨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들여다 보듯이 또는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자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상담을 받으로 오시는 한분한분이 나에게는 각기 다른 우주를 만나는 기분이든다. 또한 각 다른 무당 선생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것도 너무 재미나다. 남들이 모르는 보이는 자들의 수다들이라고 할까.. 맘이 트여서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계속 이야기하게 된다. 내가 요즘 가장 관심이 있는것은 어떻게 하면 영성을 일상생활에 뭍어나게 자연스럽게 하는가 이다. 아마 이 부분이 기독교에서 내가 선교에 환장한거랑 비슷한 것 같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신앙과 영성을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뭍어나게 사는것.. 어떻게 해야 보다 자연스러워질까..

다르지만 같다
이렇게 쭈-욱 써보니 다른 종교에서도 나는 관심분야도 같고 관심이 없는 분야도 같다. 가만 보면 영성과 종교의 틀에서는 이름만 다른게 붙이지 거의 비슷한 활동을 한다. 선교를 포교라고 하고, 성령을 신령이라고 하고 ..다 거기서 거기이다. 구역활동을 재가집들 모임이고 부흥회가 굿이고 감사 예배가 진적예배이고 새벽기도는 자시 기도이고, 수양회는 산기도 강기도 가 되는거다. 난 이둘사이에서 같은 활동에 관심이 있고 같은 활동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같은 고민을 늘 해왔다. 어떻게 하면 더 신과 같은 결의 삶을 살까?
아..이게 나구나..
나는 변하지 않고 신이 변했다.
그럼 생각해보면 기독교를 다녓던 나나 무당을 하는 나는 변한게 별로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 ” 신” 이 변했다. 실상은 변햇다고 할수있는거보다 폭이 넓어졌다? 라고 해야되나? 아니면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라고 해야하나.. 기독교의 봉건적인 하늘 아버지에서 무당이 된 나는 “신”은 나와 “함께” 한다. 신에게 나의 인생이 맏겨진 부분보다 신이 나의 인생을 나에게 맡긴 부분이 더 크게 느껴진다. 교회에서는 신의 눈에 들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지금은 신을 내 안에 담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해야되나? 어떻게 하면 내안에 신을 담을까? 같은 이야기같지만 굉장히 다른다. 내가 신과 하나가 되면 내가 신이 되고 신이 내가 되는 경지가 이르기 때문이다. 이런걸 접신을 통해서 경험하기도 하는데, 정말 무당만이 느낄수있는 최고의 선물 같은 경험일수도 있다. 내가 신의 월력을 느끼고 관잘하고 경험하는 순간이 되는거다. 이런 부분이 아마 동학에서 사람이 신이고 밥이 신이다 라는 말을 하지 않을 까 한다.
결국은 우리 인간은 신을 담는 존재이니까.

요 며칠, 나의 모든 감각이 다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또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것 같다. 기대가 되고 어떤 깨달음이 올까 하고 궁금하다. 어떤 신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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