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은 역할은?
지인이 속상한 말을 한다. ” 선생님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인정하지않는것 같아 속상해요..”
자신이 소개해준 사람들이 나의 상담의 권유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원하는데로 그대로 하는걸 보고 안타깝다는 이야기다.
” 당연한건데요 뭐…”
첫 반응
처음 메세지가 들렸을 때의 기억이 난다. 너무나 신기했다. 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가질 인생의 문제가 보였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 보였다. 너무 신기했다. 얼른 알려줘야지. 그들이 나처럼 생각이 되었고 내가 만약 그들이라면 누군가 나의 인생의 문제가 보이고 거기에 대한 해결책이 보인다면 얼마나 알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생각한것은 나의 지인들과 나의 가족들.. 전화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들의 반응은 우선 너무 당황스러워했다.
” 아니, 너가 뭐 그런게 다 보이니?”
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네 말이야, 그런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그동안 이런문제가 잇엇잖아? 그게 이렇기 때문이라니까..” 하고 열심히 그들의 인생살이의 문제의 해결법을 알려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였다. 저녁에 공부할때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뜨게 되어서 본 암환자들의동영상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왜아픈지가 보였고 그대로 하며 낳을수있다는게 보였다. 그래서 미친듯이 그들에게 연락을 하고 이메일을 보냈다.
다 내 마음 같을줄 알았다.
누가 우리 아픈 딸을 보고 해결책을 안다고 연락을 주면 난 미칠정도로 고마울것 같았다.
그런데 현실을 정말 달랐다.
지인들 조차도 시큰둥 했다. 그러니 나를 모르는 사람은 어떨까? 거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보이스 피싱같은 사기꾼취급도 받았다. 암 4기 말기이면 알아볼법도 할텐데..나의 이야기를 썼는데도 시큰둥했다.
” 이게 뭐지?”
어떤 나의 지인들은 아예 나하고 연락을 끊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돈을 받는다는것도 아니고 어떤걸요구한것도 없는데 그들의 반응은 정말 놀라웠다.
어떤 지인은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걸 너무 재미있어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할때는 너무 부담스러워했다. 또한 자기에게 그대로 공수를 주면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또 어떤 지인은 너말대로 했는데 안되던데? 하는 비야냥 거리는 사람도있었다.
혼란스러움은 말도 못했다. 이건 도대체 뭐지?

뒤바뀐 입장
어느 순간 나는 사람들에게 내 말좀 들어봐주세요..하는 애걸하는 입장이 되어있는듯했다. 내가 왜 나의 인생도 아니고 남의 인생때문에 잠도 못자고 안타까워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하는지. 이해가 안됬다. 옆에서 보는 남편도, 뭐하러 알지도 못하는 남의 인생때문에 너가 그러구있냐. 쓸데 없는 일을 한다. 하고 한마디 했다. 나도 이해가 안됬지만 저절로 가는 나의 마음을 주체할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들에게 알릴까? 이런 방황이 꽤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가장 친한 사람들의 냉대와 얕보는 태도 ( 이제 무당이 되었으니 그들의 태도가 좀 변해지기 시작했다.) 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안타까워하는 나의 마음속에 조금씩 상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 고맙다는 말을 들어도 모자란데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지?”
억울함과 서러움이 몰려왔다.
하나님에게 물었다.
” 하나님, 제가 성령달라고 햇지 무당 만들라고 했어요?! 이게 뭡니까?!”
마음속에 울림이 들렸다
” 풍성하게 살라고…”
” 이게 어떻게 풍성함이여요, 개 혼돈이죠..”
주체없이 서럽고 서러웠다. 눈물이 쏟아졌다. 이게 뭐하는 지랄인가. 아픈딸 두고 지 일이나 하지 뭐한다고 남의 인생사에 끼어들어서 이런 추잡을 떠나 싶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대로 남의 일에 상관을 하지 않으리라.. 내가 왜 !
그런 다짐을 할 수록, 나의 마음을 강하게 할수록, 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졋다.
하나님은 어떠실까?
다 만드시고 다 아시는 저분의 마음은 어떠실까?
아.. 염병할..
진짜 어디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바위로 숨을까 , 나무뒤로 숨을까..

냉정한 사랑
우선, 다른 사람의 안타까움의 마음을 접고,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도대체 왜 나는 이런게 보일까? 그리고 이런 능력을 어떻게 우리 아픈 루비와 우리 가족에게 쓸까? 그런데 신기하게 이런 신의 능력은 자꾸 밖으로 향하게 했다. 나의 가족과루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 남의 마음의 담장을 넘는 넝쿨이 되어 뻗치는 기분이 들었다.
” 안 듣는다구요!!!”
하늘에 대고 말을 했다.
” 나만 미친년 된다고요!”
” 우리 루비나 고쳐주세요!”
그때 그시절에 신을 향한 나의 태도는 화가 잔뜩난 20대의 연인 같았다고 할까?
이런 시간뒤에 마음에 작은 울림이 들렸다.
” 그게 사람이야.. 사람을 배워..”
사람을 배우라는 울림이 아.. 그렇구나 싶었다. 난 사람공부가 안되었구나. 사람들이 다 나같은 줄 아는구나. 문든, 옛 대학동기 수희와의 일이 생각났다.
우리네 인생은 다르다
대학졸업하고 몇 해 지났을때다. 동기들하고 간단한 목욕계를 했는데 이게 여행계가 되었다. 미국에 있다가 셋째의 출산을 위해 잠시 한국에 갔을때 우리 동기들이 나의시간에 맞추어서 같이 모임을 했다. 쌓여잇던 돈도 있고 하니 모처럼 만나서 아이들도 보고 회포도 풀자고 했다. 모여있던 돈은 우리가 호텔 식당을 이용할수있었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 졸망졸망한 아이 셋을 키우는 터라 재정적으로 넉넉한 상황이 아니였다. 반면, 대학시절 나와 방을 같이 쓴 수희는 대학졸업후 아버지가 이사로 있는 증권회사에 취직을 해서 제법 재정적으로 튼튼했다. 그때나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나같은줄 아는 큰 착각에 빠지는 병이 있나부다. 밥을 먹으면서 흘려가듯이 말을 했다.
” 애들 어리고 그럴때는 그냥 밥만 먹고 살면되지..”
어린 아이 세명을 키우니 지금은 재정적으로 좀 쪼달려도 육아하면서 그렇게 살면되지 하는 식의 말을 했다.
” 야, 어떻게 사람이 밥만 먹고 사냐?”
수희가 얼른 내 말뒤에 되밷는다.
그때 많이 놀랬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순간 나와 수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고무줄로 질끈 머리를 매고 대충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나의 모습과 세련된 복장에 고급호텔 식당의 비싼 메뉴를 늘 상 시켜온것 처럼 자연스럽게 시키는 수희가 있었다.
“이 병신아… “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희 뿐만이 아니였다. 나의 동기들은 제법 나랑 다른 모습들이었다. 어머니 공장을 물려받아 그당시 아파트가 이미 여러채가 있는 친구, 이미 중형 자동차를 몰며 자신이 일하곳에서 관리직급으로 승진되어 있는친구들.. 나를 둘러싼 나의 동기들은 나처럼 생존형으로 아이들을 키우지않았다. 내 동기들은 자신의 아이들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고 어떤 “급” 의 학교를 다니는가를 이야기하고있었다.
그때 그시절의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정신 차려라.. 다들 너 같지 않다. 다 살만해.. 너 처럼 그렇게 다급하지 않아..”
다름의 인정, 다름의 공부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난 다름의 인정과 공부를 한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 있어도, 또 엮이지 않아야되는 인생의 굴레에, 본인들이 그렇게 싫다고 했다는 상황에 다시 엮이는 일이 코 앞에 왔는데도, 자식이 안해도 되는 고생을 할건데도,
사람들은 듣지않는다. 상담을 하고 같이 울고 동감을 하고 마음이 편해지고 이제 왜 그랬는지를 알겠으니 일러주신대로 하겠다고 하면서 절대로 듣지않는다.
다 큰 자녀가 마약에 빠져서 앞길이 보이지않고 자신의 인생도 막막해서 상담을 하고 그 방법을 일러줘도 듣지않는다. 정말 10명중에 듣는 사람은 1명도 안된다
100명중에 한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과정중에 배운게 있다. 사람은 정말 다르다. 그리고 사람은 자유의지가 제일 중요하구나.
며칠전에 지인이 문자를 보냈다.
” 선생님,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게 너무 속상해요.”
무슨말인가 하니 자신의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나의 의견을 듣지않고 신뢰하지 않는것을 보고 속상하다는 말이다. 본인은 나와의 경험을 통해 도움도 받고 긍정의 경험이 많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가족의 모습을 보고 답답해 했다.
” 당연한거여요.”
” 네?”
나의 말을 듣지않고 자신들이 그동안 살아온대로 결정하고 본인들이 마음에 내키는대로 하는것이 당연하다고 하니까 사뭇 놀라는듯하다.
나의 조언을 듣고 실천한 본인이 100명중에 1명을 넘어선 사람인걸 알지 못한거였다. 본인이 독특하신거지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아요. 이말은 차마 전하지 못했다. 위험한 말이기 때문이다. 꼭 내말을 다 들으면 독특하게 뛰어난 사람이라는 표현도 될수있을듯해서..그러면 꼭 내말을 다 들으라는 무언의 압박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의 점사의 조언을 듣고 행한것도 그녀의 자유의지이니 그런 자연스러움을 방해할듯 했다.
무당의 기본역할
오랜 무당 생활을 한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영성의 생활의 경험으로 보면 , 무당의 기본 역할은 그저 ” 듣고 전하는 자” 아닐까 한다. 이게 기본일듯하다. 처음에 난 ” 해결사” 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그럴수있다. 그러나 그런 해결사의 역할은 정해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해당한다. 일반적으로는 듣고 전하느것에서 끝난다. 그뒤에는 듣는사람들의 몫이다. 그도 당연한것이 그들의 인생이 아닌가. 내 인생이 아니니 내가 그들의 인생을 책임을 지는 그 어떤 의도적 관여를 하면 안되는것이다.
요나

성경에 요나라는 인물이 있다. 아이들 성경책에 꼭 나와야하는 주요인물중에 한명이다. 그만큼 그의 인생의 서사가 독특하다.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산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성경을 읽을때 난 요나가 참 안된 인생이라는 생각을 종종했다. 왜 하나님은 요나한테 저렇게 어려운 일을 맡기시고 그리고 또 나중에는 왜 요하나한테 뭐라고 하시지? 이해가 안되었다.
무당이 된 후 난 종종 내가 요나 같은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하지않아도 되야하는 말, 하기 싫은 말을 해야될때가 있다. 이 말을 하면 나도 이상해지고 듣는 사람도 이상해지는 말도 해야할때가 있다. 이런 상황이 싫어서 어디론가 피하고 싶어 다른 직업처럼 나의 일을 꾸며 볼때가 있다. 그럼 정말 물고기 배속에 갇힌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온다. 뭔가 시원한 느낌보다 답답한 느낌이 있다. 환장할 일이다.
요나에게 박 넝쿨을 비유하여 하나님의 대화 가 시작된다. 난 예전에는 이걸 하나님이 요나를 나무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하나님의 설득으로 다가온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그 크신 영이 한갖 개미와 같은 존재인 인간 요나에게 자신의 입장을 구차하게 하나씩 변명처럼 말을 하는것 처럼 느껴진다. 나도 이런때를 경험한다. 신께서 나에게 달래신다.
” 아가야, 힘들지… 우리 아가 힘들어서 우짜노..”
무당은 이렇게 사는게 아닐까..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자는 이런 위로와 관계속에서 사는게 아닐까..
요나는 사람의 위로를 받지못했다. 지금까지도 어린이 성경속에서 빠지지않는 하나님의 말을 거역하다가 물고기 뱃속에 3일 갇힌 어리석은 자 처럼 보이는 성경의 한 인물로 나온다. 그가 어떤 힘듬이 있고 그의 마음의 갈등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그저 신의 말을 거역한 한 사람으로만 사람들은 기억한다.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살게 하신 하나님의 자비만 기억한다. 요나의 고통은 그들의 관심밖인듯하다. 요나에게 신께서 박넝쿨로 다가가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요나는 어떻게 살수있을까? 신의 위로의 말이 아니면 그가 견딜수있을까? 요나의 이야기는 신화이지만,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성경의 이야기중 하나이다.
한국의 전통신앙 무당의 역할을 이스라엘 민족신앙 유대인의 이야기 요나와 비교하니 어색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적절한 비유이다.
신에게 위로받는자.. 신과의 공감을 하는자..
요즘 한국에서 젊은 무당들은 거의 연예인급처럼 대우를 받는것 같다. 성형수수를 해서인지 아니며 타고나기를 그런건지 모르지만 훤칠한 외모에 신적이 카리스마가 더해지니 내가 봐도 참 멋지다. 그런 멋진 무당들 을 볼때는 멋지다라는 생각도 들지만 걱정도 든다. 저런 세상의 거품속에 어떻게 잘 버틸까?
무당은 인간의 환대와 비난과 질타에도 흔들림이 없어야한다. 아마 그래서 옛적의 무당과같은 존재들은 시대적으로 죽임을 당했지 싶다. 서양의 마녀사냥도 그와 같은 결을 이루고 , 이조 시대에 모든 무당을 천시하게 만들었던것도, 또한 일제 시대때 조선의 무당을 개처럼 여기게 한것도, 또한 어설픈 미국의기독교기반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도 또한 공산체제에서도 무당은 한 발자국도 설자리가 없었다. 이런 세월을 몸소 체험한 한반도의 대표 무당이 계셨다. 김금화 무당선생님.
김금화 선생님을 비롯해서 앞선 무당선생님들에 비해서 지금은 참으로 편한 세상이 아닐수없다. 사회적 제도적으로 압박을 당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무당들이 해결사처럼 보여서 우대를 받는 시대 이기도 하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전한 지인의 마음이 참 고맙고 예쁘다.
신의 위로로 사는 사람이여도 사람의 공감은 꿀 처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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