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바라던 삶의 방향으로 살기로 맘을 먹기까지가 이렇게
힘이들었다. 결국은 나를 설득하는데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내가 바라던 삶
내가 늘 꿈꾸던 삶은 자유였다. 자유로우면서 나의 창조물로 내가 먹고 살수있는 삶. 경영학적인 용어로는 패시브 인컴이 나오고 내가 나의 마음대로 시간을 정해서 사는 내가 나의 삶의 자유를 누리는 삶을 원했다. 언제 부터인가? 아주 어렸을때부터이다.
어렸을때부터 난 불안과 자신감결핍과 여러가지가 합쳐져서 내가 과연 직장생활을 할수잇을까? 내가 누구아래에서 돈을 벌수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내마음 깊은곳에 있는 갈등은 난 늘 내가 넘어가야하는 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이런 갈등덩어리를 안에 넣고 열심히 전투적으로 살아왔다.
열심히 사는 동안 늘 문득문득 떠오르는것은 ” 내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꼭 살아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잡기위해서 몇십장의 이력서를 내고 셀수없는 자격증을 따고.. 내가 꼭 이렇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별쓸데 없는 생각을 한다 하는 마음으로 무시할수없을정도로 간격을 유지하며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고 나무랬다.

내가 원하는 삶의 가장 큰 건 글을 쓰는거였다.
실상, 지금은 아무도 인정하고 믿지않지만.. 나는 극강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말을 하는걸 별로 좋아하지않앗고 참 어색했다. 그러나 삶의 어느 부분에 나도 모르는 어떤 기운으로 초등학교 6학년때 나의 이런 내성적인 성격은 아무도 보지않아야하는 속옷으로 변했고 겉옷은 털털하고 말잘하고 웃긴 성격으로 둘러졌다.
글을 쓰는건 참 좋아햇고 중학교때도 글을 쓰면서 살고싶엇다. 그러나 몇번의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나는 절대 나의 마음을 글로써 남기고 싶지않았다.
50이 되고 신를 받고 무당이 되면서, 세상에 살려고 만든 나의 옷이 얇아지면서, 이런 트라우마들이 극복할만한 힘이 생겼다고 할까? 이제 글이 써진다. 내 마음의 말들이 하나씩 튀어나오고 말보다 글로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6학년때 숨었던 나의 모습이 살살 모습을 들어낸다고 해야할까?
내가 하고 싶은것들
내가 하고 싶은것들을 적어본다.
- 글을 쓰기
- 그림 그리기
- 그릇 만들기
- 뜨개질 하기
- 이불 만들기
- 집을 이쁘게 하기
- 사진찍기
- 도장 만들기 ( 판화)
- 나의 작없실과 전시실을 가지기
- 여행하면 글쓰기
- 춤을 배우기
- 과일주와 만든 빵을 먹기
- 세계의 박물관 돌아다녀보기
작가는 이미 시작되었다. 나의 공동체와 함께 100일 글쓰기를 한다. 도움이 된다. 매일 같이 뭔가를 쓰는 일상의 습관은 작가의 기초를 닦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세계의 박물관을 돌아다녀보기는 이번 한국여행때 부터 시작된다. 내가 가는곳의 한국 지역 박물관부터 꼼꼼히 다니고 사진도 찍어보려한다. 이번에는 제주와 백제, 전주쪽을 돌려고 한다. 이부분은 여행작가하고도 겹쳐지는 부분같다.
나의 작업실과 전시실을 만들기위해서 지금 집을 지을려고 한다. 이또한 나의 흐름대로 가면 되지않을까. 사막 땅과 바다 근처에 나의 작업실과 전시실을 만들것이다.
창의적지능 ( 닥터 쵸프라 )
나의 창의적 지능을 최대한 많이 쓰려고한다. 누가 해준것 보다는 내가 나의 스타일에 맞게 만들기. 닥터 쵸프라는 우리 인간은 창의적 지능을 가졌다고 한다. 이것이 실제 양자의 기능인데 인간은 이 창조적지능을 얼마나 유지하고 자신의 삶에 쓰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질수있다.
내가 앞으로 살고 싶은 나의 삶은 나의 창조적지능의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50년은 방황, 갈등, 조율, 타협 또는 전쟁같은 삶이였다고 하면 앞으로의 약 30여년은 나의 창조, 발견, 배움,조화의 삶을 살려고 한다.
무엇이기보다 무엇을 하는가에 집중하기
나처럼 타이틀을 좋아하고 명함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었을까? 미국에서 첫 직장을 다녔을때도 그 직장의 좋은점이 많은데 그중에 나에게 영화에서만 보던 미국사람들이 목에 매고 다니던 직장 사원 이름표였다. 그 이름표로 회사의 문도 열고 , 너무 멋져보였다. 늘 난 ” 무엇” 이 중요했다. ” 누구” 라는 타이틀이 너무 중요했다. 명함도 좋고 이름도 타이틀을 근사하게 붙여주는것이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 무엇이다” 라는 것보다는 ” 어떤 행동을 하는가” 가 더 중요하다. 내가 어떤 타이틀을 얻는것보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작업을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타이틀을 그냥 가져다 붙이기만 하는 딱지이지 실제는 어떤일을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걸 깨달았다. 이게 아마 현실이 무엇인지를 직시한게 아닐까 싶다. 누구라고 불려지는것보다 어떤에너지을 가지고 어떤 것을 만드는 일을 하는 에너지인가가 더 실제적이다. 그러니 난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게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되고 교수가 되고 컨설턴트가 되고 가 아니고 글을 쓰고 가르치고 상담을 하고 라는게 더 맞는것 같다.
난 무엇인가? 라는 방황
난 늘 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늘 했다. 중심은 가장 멋진 말로 표현되고 싶었다. 상담자 보다는 컨설턴트하면 뭔가 더 있어보였다. 이제는 이런 타이틀이 아무 의미가 없다. 뭐라고 불리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내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있는가가 더 중요한거다. 무당이라는 타이틀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내가 영성안에 거하는가 아닌가가 더 중요한것이다. 내가 작가냐 아니냐가 중요한것이아니고 내가 지금 글을 쓰고잇는지 또는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잇는지가 더 중요한것이다.
행동계시
컴퓨터에 앉으면 습관은 늘 유트브를 보거나 다른 뭐 재미있는거 없나 하는 다른 사람의 유트브나 방송을 보는것이 나의 예전의 습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유트브 채널을 먼저 확인하고 그리고 나의 블로그에 와서 오늘 하루의 영감을 생각하고 기록하려고 한다. 늘 남의 동감을 중요시여기고 남의 인정을 갈망하던 삶에서 이제 나의 창조에 더욱 집중을 하니 뭔가 채워지는 든든함이 있다.
모든 삶의 시계는 나와 나의가족의 위주로 돌아가니 내 삶의 중심의 축이 나에게 있는것 같다. 이런 삶으로 하루들을 살아가니 어느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인정의 욕구와 집착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내가 인정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자체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삶을 살기까지, 나를 설득하는데 까지 꼬박 50년이 걸렸다. 나를 설득하고 나를 납득 시키는데 이 세월이 걸렸다.
뭐하나 잘하는것 없는 볼품없어보이던 나의 삶은 무궁무진한 나의 창의적인 행동과 생각으로 채워넣고 그려넣어야하는 캔바스처럼 생각된다.
건강, 옷, 하루의 일상 시간, 나의 공간, 나의 관계, 모든것이 내가 만들어가는 캔바스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