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산다는것이 이기적인것이라고 생각했다.
까탈부리는것은 남을 불편하게 하는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 나의 모습을 숨겼다.

나였다.

우연한 기회에 내가 속한 쏠앤스터디 (Soul&Study)모임에서 Disc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경영학적인 면에서 Disc를 모르는것도 아니고 아마 기억은 잘 나지않았지만 석사 학위할때 이 툴로 뭘해서 낸 기억도 난다. 낯설지않는 Disc 가 이번에는 새롭게 느껴졌다. 발표하시는 분의 정리된 설명에 나를 비추어보니 내가 그동안 알고있던 나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 살짝 비춰졌다.

아, 내가 C 인데. 지금까지 나의 내면의 모습을 철저하게 봉쇄를 해서 그런가 지금까지 난 늘 D 나 다른 모습이 나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난 늘 C 였다. 난 나의 원래의 모습을 까먹고 있었을정도로 나를 보호하는 갑옷과 무대의상을 입고있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한마디..

많은검사를 하고 여러가지 유형별검사를 했었어도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은 단 한마디의 말에서 들어났다. ” C 형은 정말 궁금한건데 그렇게 물어보면 분위기를 깨니까 이런 궁금증을 밖으로 표현을 안해요.” 정말 그랬다. 그게 나였다. 설명한 강사님이 짜짱면의 표현을 썼는데, 그때의 C의 유형의 행동이 정말 내모습을 CCtV로찍어서 읽고잇는것 처럼 똑같이 말을 했다. 맞다.. 내가 그랬지..

기쁨과 정확한 시간

늘 내 갑옷속에 있는 나의 무대의상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불안했다. 어렴풋한 기억에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난 늘 궁금했다.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하면 그말의 의도와 원인이 궁금했으나 물어보지 못했다. 예를 들면 한번 중학교때였을까? 학급에 무슨일이있어서 편하게 앉아있으라고 해서 마음대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았던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책을 읽고있었던지, 아무튼 선생님이 오시더니 나만 한쪽줄 앞에 앉아있고 우리반 애들이 다 오른쪽 줄에 다 모여앉아있었다. ” 야, 다들 이쪽에 주르르 앉아있는데 왜 너만 거기 앉아있니?” 나무라듯 말하는 선생님이 이해가 안되고 억울했다.

편하게 앉고 싶은데 앉으라면서?

그런 여러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는것이 난 참 힘들었다.

대학교때엿을까?

엠티를 갔다. 워낙 중학교때부터 혼자있는 생활을 해서 인지 많은 사람이 같은 방에서 잔다던가 여러사람이 한꺼번에 같은 식사를 하는것이 신기하면서 도 불편했다. 그런데 표를 내기가 참 힘들었다. 웬지 까탈을 부리는것 같고 뭔가 무리속에 섞이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불편함은 계속 되었던것 같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이 없으면 안사고 입던 옷을 그대로 한참 입었다. 그러면 주위의 사람들이 뭐라고 했다. 참 게으르다. 곰순이다. 어떻게 저렇게 옷을 안갈아입는지..

이런 말들이 왜 그때는 무시가 되지않았을까..

아.. 내가 원하는데로 살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구나.. 이상한 애로 되는구나.

가랑비에 몸이 젖듯이 이런 작은일들이 하나씩 쌓여서 나만의 방식이 나를 이상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 후부터는 나는 털털이가 되었다. 어떤거든 상관이 없어졌다.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것이 아닌데 뭐든 어떤가.. 대충대충 사는 스타일 되었다.

50이 되고 루비를 보내고

50이 되면서 난 많은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또 우리 루비를 보내고 나서 더욱 더 작은것이라도 본질적인것으로 집중하게 되었다. 또한 나한테 솔직한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무대의상을 그만 입자. 그만 괜찮은척 쿨한척 하자. 왜 내가 두꺼운 무대의상을 입을수록 나의 심장을 아파왔다. 더 혼란스러웠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더 커졌다.

어색함의 익숙함.

원래의 나의 성향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워낙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에 옆에 사람이 푸근하게 쉴수잇는 성격보다는 뭔가 점검을 해야하는 그런 성격이다. 밖에서 보는 사람은 나의 이런점을 잘 모르지만 우리 가족, 특히 나의 남편은 누구보다 그점을 너무 잘안다.

이런 까다로움을 그대로 내가 다 표현을 하면 너무 어색해지는것이 싫었다. 예를 들면 , 아니요 싫은데요, 라는말을 한다던지, 아니면 말을 하기 싫으면 침묵으로 일관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상대방이나 주변이 어색해지니까.. 이런 어색함이 참 불편했다. 또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의 생각에 충실한것은 은근히 죄처럼 느껴지게 했다. 자기감정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처럼 느껴졋다.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존중하고 배려해야한다.. 이런말은 수도없이 학교 도덕책에서 배웠고,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가져야할 기본덕목이라고 했다.

그러니 난 이런 어색함을 절대로 만들어서도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노라는 말보다는 늘 예스를 만들려고 했고 ( 속으로는 싫은데도) 그리고 말을 안하기보다는 쓸데없는 말을 더 붓여서 어색한 분위기나 환경을 없애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수퍼맨과 예수님을 섞어놓은 알수없는 무대의상을 입고 살았다.

원래대로

이제 난 과감하게 나를 들여내려고한다. 화합과 어떤 공동의 선을 위해, 도덕적인 도의를 위해서 나에게 억지스러운 무대의상은 이제 그만 입히려고 작정을 했다.

싫은것은 싫은것이고 좋은것은 좋다. 먹는것도, 옷도, 사는 형태도, 삶의 방향성도 , 이제 다 내가 원하는데로 하려고한다. 인생에 중간점이라는것이 있을까? 어차피 자기가 좋아하는데로 생각하고 그 대로 사는게 사람의 인생인데 왜 내가 두가지 마음을 가져서 혼란을 가져올까?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게무슨상관일까. 또한 그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의식하고 산다느것이 말도 안되는 삶이다. 내가 사람들의 관심으로 먹고 사는 연예인도 아니고 왜 내가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그것도 특별하게 딱 정해진 사람도 아니고맞출려고 노력을 할까? 지금 껏 살아보니 자기 인생은 어차피 자기가 사는것이고 남이 나를 위해 살아주는것은 단 한순간도 없던데..

무대의상

내가 지금까지 걸쳐입었던 무대의상을 본다. 내 스타일이 아닌 남의 옷이다. 남이 줘서 이런거 입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 안받아 하는 그런 나와의 취향과는 절대 맞지않는 옷같다. 아.. 지금까지 저런 옷들을 입고 살았구나.

결심

난 이제 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삶의 모든것을 내 스타일 나의 원하는것, 나의이유가 존재하는식으로 디자인하기로 한다. 처음부터 의식주부터 해야지. 나의 모든 삶은 나의 스타일대로 나를 표현해내는 그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와 관계된 모든것들., 처음부터는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부터. 어떤 옷을 입는가, 어떤 음식을 먹는가,어떤곳에서 사는가 이런것이 삶의 방식이고 나를표현하는것이 아닐까..

앞으로 나는 나의 삶의 모든것은 나의 소울을 그려내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지금부터 나의 의식주는 나의 삶의 여정에 어떤식으로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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